VOSTOK 41 - 빛과 색
2023년 9–10월호 | VOL. 41
특집 | 빛과 색
001 Daily _ Rintaro Kanemoto
014 Creamy & Blurry _ Kin Coedel
024 Beyond Reality _ Amanda Sellem
036 Playing with Light and Shadows _ Delfina Carmona
064 Adam and Adam _ Ella Bats
074 Framing, Focusing, Lighting _ Lauren Bamford
086 Unusual Fragment _ Tobias Nicolai
096 Current Study / Exploded View Sjoerd _ Knibbeler
108 이퀘이션 _ 서동신
120 도시 관람 _ 최지원
130 얇은 빛_이옥토
135 움직이는 빛_서이제
140 시를 쓸 때만 발생하는 빛과 색에 대하여 _ 안희연
146 개인적이고 특수한 빛의 이름들 _ 이훤
152 검은 옷의 추방자들 _ 김병규
158 [연재: 일시 정지] 풍경과 이미지: 다시 풍경론을 생각한다 _ 서동진
166 Orbis Terrarum / Inner garden _ Mariko Ohya
176 YO HA _ Taka Mayumi
188 Interlude _ Yuki Kumagai
200 라피 _ 정멜멜
212 라이트 파우더 _ 이옥토

나에게만 나타나는 빛과
나에게만 다가오는 색들
어떤 사진가들은 예민한 눈으로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빛’을 기어코 사진 안에 투영하고, 그 반짝임에 따라 변화하는 어떤 ‘색’을 프레임 안에 주사한다. 이번호는 그런 ‘빛과 색’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사진을 불러 모으고,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통해 나에게만 나타나는, 또 나에게만 다가오는 ‘빛과 색’을 놓치지 않은 이미지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각자 ‘빛과 색’으로 연결되는 어떤 기억과 의미를 탐색하는 이옥토, 서이제, 안희연, 이훤, 김병규, 김리윤의 에세이도 만날 수 있다. 이번호에서 카메라를 처음 들고 내가 좋아하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몸짓을, 또 나에게만 반짝이는 빛을 숨죽여 기다리는 눈짓을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근사한 ‘빛과 색’을 숨죽여
기다리는 눈짓과 몸짓들
“제가 좋아하는 코코예요.” (이게 강아지라고?) “제가 좋아하는 푸예요.” (이게 곰 인형이라고?) 대여섯 살의 아이들이 찍은 사진은 알아보기 어려워도, 카메라를 든 아이들의 마음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처음 카메라를 들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알아보기 힘든 사진을 찍어 왔지만, 그 모든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사실로 통했다
사실, 어른들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아해야 바라보고 싶고, 좋아해야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걸 바라보고, 또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걸 간직하는 일이 꽤 곤욕스럽다는 점에서 어른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사진 찍는다. 다만 어른들은 아이처럼 꾸밈없이 솔직하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내색하는 것이 겸연쩍어 점잖은 이유나 그럴듯한 의미를 두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사진에서나 어른들의 사진에서나 촬영자의 눈길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꽤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찍다 보면 조금씩 빛에 눈을 뜨게 된다. 메커니즘 측면에서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생성되는 데 빛의 요소가 필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진으로 근사하게 보여주려면 절대적으로 양질의 빛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프레이밍하고, 반짝이는 빛이 깃드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르면 제법 근사하게 ‘예쁜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사진은 그저 예쁜 껍데기일 뿐이니 무의미하다고, 그런 사진을 찍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왜 그렇게 ‘예쁜 사진’을 경계하는지 그 의중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예쁜 사진’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모두에게 좋아 보이는 것에, 나에게만 반짝이는 빛보다 모두에게 반짝여 보이는 빛에 집착하게 된다. 그럴 때 클리셰가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기에 공식처럼 짜여진 ‘예쁜 사진’의 클리셰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비난을 하는 이들이 간혹 쉽게 놓치는 것이 있다. 반대로 ‘안 예쁜 사진’의 클리셰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클리셰를 피해 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를 감안해 같은 클리셰라면 ‘안 예쁜 사진’보다는 ‘예쁜 사진’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좀 더 근사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지와 실천에는 야무진 정성이 필요하니까. 더욱이 ‘클리셰의 함정’에 빠져나와 기어이 자신만의 ‘예쁜 사진’을 성취하는 작업자들이 있다. 그들은 예민한 눈으로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빛’을 기어코 사진 안에 투영하고, 그 반짝임에 따라 변화하는 어떤 ‘색’을 프레임 안에 주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