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12월 15일 발표된 일본의 전설적인 권투 만화.
원작은 카지와라 잇키이며, 이미 거인의 별로 유명한 터라 독자에게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타카모리 아사오(高森朝雄)라는 가명을 썼다. 작화는 치바 테츠야가 담당했는데,
작화만 담당한 게 아니라 스토리에도 많은 영향을 줬기에 내일의 죠는 두 사람의 공동 창작물이라고 본다.
만화사에 이름을 새긴 영원한 명작. 도쿄·아사쿠사의 쪽방 거리에 불쑥 나타난 한 소년.
야부키 죠라고 불리는 이 소년에게 일방적으로 타격을 입은 알코올 중독의 권투 선수 탄게 단페이는
그 움직임에 천부적인 복싱 센스를 찾아 일류의 복서로 만들기로 분투하는데……
고아원 출신인 부랑아 야부키 죠가 권투를 만나 청춘을 불태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또한 1960년대의 일본 빈민층의 생활과 인생을 매우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빈민촌 사람들은 전기도 수도도 없고 비바람만 가려주는 나무집에서 살고있는데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빌딩과 시가지가 있다. 이게 1960년대 일본의 풍경이다.
오죽하면 차별 발언이 너무 많아서 2010년대 이후 지상파 재방송이 불가능하며
현재 출간된 만화책에선 원본 대사를 수정해서 없애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병신, 부랑자, 폐인, 거지, 정신이상자, 애꾸 같은 말들도 방송불가 용어인데
카지와라 작품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이런 단어를 마구 쓰는 경향이 있었다.
2018년 내일의 죠의 50주년 기념으로 한 기자가 치바 테츠야에게
”50년이 지난 지금도 (내일의 죠가)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치바 테츠야는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마음의 갈등이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그려왔기 때문일까나“라고 답했다.
펀치 드렁크 상태에서도 모든 것을 불태워서 세계 챔피언과 명승부를 이뤄낸 후,
모든 것을 불태운 남자는 새하얀 재만 남은 채로 조용히 휴식을 취하게 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죠가 죽었다 안 죽었다 말이 많지만 원작자의 말에 따르면
”죽은 것은 안 나왔다. 내일의 죠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애당초 죠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운 그 결말은 더이상 이야기가 이어질 여지가 없는 완벽한 결말이기 때문에
이후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2008년에 작가 본인이 죠는 살아있다는 견해를 밝혔다.